141일차 (호10-14장)
*주제: 하나님의 진노
*Reading Guide
성정 전체에서 호세아 11:1-11보다 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애틋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곳은 없습니다. 1-3장에서 행음한 여인의 '남편'이셨던 하나님은 11장에서 철부지 자식을 품에 안고 고뇌하시는 애끓는 '부모'의 표상으로 등장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린아이였을 때부터(애굽에서 불러내실 때부터) 그들의 팔을 붙잡고 걸음마를 가르치시고 양식을 먹이셨으며 그들의 목에 채워겼던 멍에 대신 사랑의 줄로 온유하게 이끄시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부르면 부를수록 하나님을 멀리하고,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등을 돌리고, 바알에게로 가서 돌아오기를 싫어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끝내 바알의 품에 안긴 백성, 하나님 대신 애급의 힘을 의지하는 그들에게, 결국 심판이 선언됩니다. 너희가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의 칼이 너희를 칠 것이다. 심판은 반역에 합당한 대가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선언되자마자, 즉각 극심한 고통을 느끼시며 괴로워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아들에게 거절당한 하나님의 쓰라린 고통. 그럼에도 그 이들을 포기할 수 없는 그분의 뜨거운 사랑과 함께 호세아서는 드디어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호11:8절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훌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은 강력한 감정적 언어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탄식을 쏟아내시며 스스로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버릴 수 있는가? 내가 어찌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영원히 멸망한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그들을 멸할 수 있는가? 내가 과연 그들을 내 손에서 영원히 놓을 수 있는가?’
깊은 고뇌 끝에 그분은 마침내 결론을 내리십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지금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는 '엄청난 비논리적 비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판밖에는 대안이 없는데 심판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포기하고 손에서 놓아버려야 하는데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강력하고 불가항력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은 범죄한 자기 백성을 뒤집어 엎으시는 대신, 자신의 마음을 뒤엎으십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의 모든 허물을 끝어안으시는 '고통의 포옹"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끌어안는 아버지처럼, 그분은 '불붙는 것 같은 긍휼로 심판해야 할 죄인을 끌어안으십니다.
그 '불합리한' 사랑의 역설이 심판과 사랑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힘입니다. 자식이 징계를 받을 때 가장 날카로운 고통의 감정을 느끼는 쪽은 부모입니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백성에게 심판을 선언하신 후, 하나님의 마음은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불붙는 것 같은 긍휼이 그분의 마음을 뒤잎고 전복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죄인을 자신의 긍훌로 끌어당기시는 사랑의 중력입니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사랑의 중력이 호세아서 전체를 뒤집어 엎고 있는 사랑의 역설입니다. 이 사랑의 역설 안에 모든 죄인을 끌어안는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하시고, 긍흘히 여기시고, 불의와 패역을 치료하시는 사랑의 절정이 모두 쏟아진 가장 놀랍고 위대한 장소입니다.
오늘 호세아서를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낄수 있기를 바랍니다.